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종(고려 제3대) (문단 편집) === 이른 붕어 === 이런저런 개혁들이 연이어서 실패하자 심신이 약해진 정종은 즉위 과정에서 인명을 지나치게 살상한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. 재위 3년차인 948년 9월에 동여진 대광(東女眞 大匡)이 와서 특산물과 말 700여 마리를 바쳤다. 대광은 고려의 고위 향직 품계이다. 고려 국민이 아닌 동여진 사람이 대광 품계를 받은 이유는 그가 고려의 제후로 취급되어 고려의 관작을 받았기 때문. 대광급 품계를 받은 걸 보면 이 여진인은 나름 높은 영향력을 가졌던 유력 인사로 보인다. 정종은 당시 [[만월대|본궐]]의 정전(正殿)인 천덕전(天德殿)에서 그를 맞이하여 [[은]], [[면포]], [[비단]] 등을 내려주었다. 이렇게 [[조공]]품과 하사품을 교환하던 중 갑작스레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. 여러 신하와 물품들이 번개에 맞고 천덕전의 서쪽 부분 또한 번개에 맞으니 정종은 이에 크게 놀랐고, 당장 편전인 중광전(重光殿)[* 중광전, 후 강안전(康安殿)으로 바뀌는 이 전각은 [[만월대|고려본궐]]에서 가장 중용된 편전이었다. 형 혜종이 죽은 곳이기도 하다.]으로 옮겨갔다.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정종은 그만 큰 충격을 받아 병에 걸리고 말았다. 그 와중에 자신의 후원자였던 왕식렴이 사망하자 마음의 병이 더욱 악화되었고, 결국 재위 4년 만인 949년 3월 13일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는 비운을 맞았다.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[[간암|간에 생긴 육종]]이 원인으로 사망한다. 정종은 죽기 전, 자신의 동생 왕소를 불러 선양한 뒤 내제석원에 머물다가 사망했다. 그 최후마저도 비참하기 그지 없어 정종이 떠난 후, 서경 천도 계획이 취소되자 부역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기뻐하며 환호하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